꼬마 여자 아이가 아현동 산동네에서 시청까지 먼 길을 힘겹게 걷습니다.
집안일을 해야 하는 아이는,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시청까지 걷습니다.
그렇게 당도한 시청에서 아이는 한글을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엄마에게 붙잡혀 배움을 접어야 했습니다.
학교 문턱에 가보지도 못한 그 아이는 그래도 그때 배운 한글 덕택에,
자식을 낳아 대학을 보내는 동안 '못 배운 사람'이란 괄시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되었고, 그 아이의 아들은 엄마가 받은 배움을 되돌려 드려야 한다며 야학교사가 됩니다... 상록 영어교사 돌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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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 영어교사 돌김'...
3년 반을 뒤로 하고, 이제 그냥 '돌김'으로 돌아갑니다.
솔직히 상록에서의 끝이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임용될 때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물음에 '계속'이라고 적었던 저였기에...
작년 8월 교무와 교사부장이 떠나는 과정에서, 부족한 교사로서 저야말로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임사를 썼드랬습니다.
'그래, 이렇게 떠나자'라고 다짐하며...
그러던 제게 도와달라며 손내밀던 일부 교사들의 이끌림에, '비겁한 개혁주의자(?)'가 되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며 썼던 이임사를 찢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만에 전 다시 이임사를 적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속절없이 한스럽습니다.
어쩌면 3년반 전 일주일에 한시간의 수업으로 만족하며 지냈던, '수수방관'하는 부적격교사로 그저 그렇게 머물렀던 그 때가 제겐 더 어울렸는지도 모릅니다. 전 그냥 제 수업을 기꺼이 즐겁게 들어주시는 학생을 만나고, 그분들께 내가 가진 것을 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물론 연구부장으로 일하는 동안 정다울, 정상수, 김소영, 장웅식, 김미란, 정윤미, 전남경이라는 주옥같은 7명의 ‘브레인’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많이 행복했었습니다. 지난 1년간 부족했던 연구부장 밑에서 고생했던 그 분들께 글로써나마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올해를 보내고자 했던, 김소영, 이상철, 권희원, 김수연, 김명규, 이재은이라는 6명의 다재다능하고 열정적인 연구부원에게 부장으로서 약속한 모습을 다하지 못하고 가는데 대한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더불어 부족한 저와 함께 생활하느라 힘드셨을 류경숙, 한명수, 김영영, 황기연, 박용준, 신재훈, 김동철, 김용택, 김보현, 조영심, 양재석, 김현희, 이상훈, 남궁영환 샘들께 그동안 많은 가르침과 격려 보내주셨던 데 대한 고마움 잊지 않겠다고 약속 드립니다.
돌아보면, 제가 지난 시간 궁금하고 원했던 건 단순했습니다.
그저 상록이 어느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랐으며,
그저 상록이 어느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상록이, 모든 학생을 위한 자유의 공간이 되고, 그들과 호흡하고자 터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달려든 교사들의 열정의 쉼터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상을 펼치기에 저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지나치게 부족했습니다.
부디 부족한 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그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려다 혹시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게 있었다면 직접 만나 사과는 못드려도 마음 속에서 늘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이임을 정식으로 8월에 해야 함에도 급작스런 결정으로 학업에 큰 잘못을 끼친 점에 대해서 중1반, 고1반 학생분들께 무어라 드릴 말씀조차 없이 면구스럽습니다. 저를 있게 했고, 저를 지켜주시고, 저를 즐겁게 해주셨던 고마우신 학생분들께 이처럼 가혹한 행동으로 불쾌하게 만든 점을 어찌 용서받겠습니까...
이제 장문의 이임사를 닫으려 합니다.
글로써 다하지 못하는 마음... 한없이 부족한 저를 다시 느낍니다...
모쪼록 어디서든 학생과 교사 모두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든 단체가 정상적으로 잘 굴러가려면, 다양성이 중요하지요.
그런면에서 상록에서의 선생님은 대단히 의미 있는 존재였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든, 타인의 도움이 부족했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힘이 너무 강했든, .... 암튼, 어떤 이유든 회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좀 아쉬움이 있네요. (선생님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실 저도 개인적인 사유로 상록에서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어 그리 당당히 말씀 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차라리 바뻐서 그만두신다는게 더 타당해 보입니다.
만일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상록의 개혁(?)이었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하셨다면 그것을 이루지 못해 회피한다면.. 남겨진 상록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아쉬운 마음에 몇글자 적어봅니다.
轉職교사 란다
2009-03-06 11:22:00
시끄러운 마초 변태 고광웅샘... 하하;
저도 이 아저씨가 보고싶군요
[진심]으로 산다는 게 무어였는지... 그립고 아련하기만 합니다
푸르름이
2009-03-06 13:04:40
겨울에게
마 경 덕
내가 앉았던 자리가 그대의 지친 등이었음을
이제 고백하리.
그대는 한 마리 우직한 소.
나는 무거운 짐이었을 뿐,
그대가 가진 네 개의 위장을 알지 못하고
그대를 잘 안다고 했네.
되새김 없이 저절로 움이 트고
꽃 지는 줄 알았네.
그대가 내뿜는 더운 김이 한 폭의 아름다운
설경인 줄 알았네.
그저 책갈피에 끼워 둔
한 장의 묵은 추억으로 여겼네.
늦은 볕에 앉아 찬찬히
길마에 해진 목덜미를 들여다보니
내 많은 날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알겠네.
거친 숨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대를 바라보며
기도한는 성자를 떠올리네.
퀭한 눈 속의 맑은 눈빛을 생각하네.
별이 식어 그대의 병이 깊네.
떠나갈 사람은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모진 척 싸늘하게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나간 사람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헤어질 땐 슬프도록 평범하게..라고 누군가의 시에서 그러더군요.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김소영
2009-03-06 15:16:16
누르름이 샘ㅋ 시 좋아요~
문학작품이 좋은 까닭은..
우리가 마음 속에 담아두고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들을
작가의 입을 통해 끄집어 낼 수 있음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암튼..
병석샘이 있는 상록을 바랬던 사람으로서..
많이 죄송할 뿐입니다.
장웅식
2009-03-11 01:41:23
잠도 안오고...ㅡㅡ;;
오늘 오랜만에 듣게된 이야기.
어떤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게 되는 이유는
그걸 포기했기 때문이라는거...
누구하나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서도
그래도 남아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것이
조금만 더 머리 아픈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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