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국제해설가대회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영어회화도 못하는 우리들이 이 대회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지만 호주에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가졌던 걱정이 그 곳 자연 앞에서 순식간에 씻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호주는 그만큼 맑은 나라였다. 숲도 자연도 공기도 모든 것이 맑았다. 이 맑음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 숲 해설가들은 이 좋은 자연을 마주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구나 감탄했다.
호주의 계절은 한국과 반대다. 만약 겨울에 호주에 가게 되면 비행기 안에서 여름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봄에 출발해서 굳이 그렇게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지만 봄에 가을의 정취를 느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시드니 근교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에 도착했을 때 그런 내 기대가 상당히 순진한 것임을 깨달았다. 한국의 가을산처럼 울긋불긋하게 예쁜 산길만 생각했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푸른 안개에 넋을 잃었다.
약 1000미터에 걸쳐 산맥을 뒤덮은 유칼립투스나무에서 증발된 유액이 햇빛에 어우러져 빚어내는 푸른 안개가 장관이었다. 거기에 융단처럼 깔려있는 숲이 마치 바다를 보는 듯 했다. 그 푸름을 보면서 왜 이곳 이름이 블루마운틴인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블루마운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세자매봉(The three sisters)인데 우뚝 선 봉우리 세 개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이 세자매봉에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 이 봉우리는 에코 포인트에 살던 아름다운 세 명의 자매였다. 어느 날, 이 자매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마왕이 세 자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이에 세 자매는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주술사를 찾아가 바위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이 주술사는 이를 받아들여 세 자매를 바위로 만들었다. 그러나 마왕은 주술사를 죽여 버리고 세 자매는 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바위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 전설을 듣고 난 후 다시 바라보니 정말 아름다운 세 자매의 모습이 봉우리에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블루마운틴의 또 다른 명물인 경사 50도를 자랑하는 관광궤도열차가 관심을 끌었다. 이 궤도열차는 과거 블루마운틴에서 석탄을 채굴할 때 사용했던 것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한고 재보수하여 놀이시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의 놀이시설보다 스릴감은 떨어지지만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옛 탄광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더불어 곳곳에 고사리가 아름드리로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을 보존하면서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놓은 솜씨에 감탄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호주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싣고 국제해설가대회가 열리는 타운스빌로 향했다.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호주의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잠시 잊었던 불안감이 다시 몰려왔다.
대회에서 만난 해설사들은 당연히 외국인들, 거기에 역사나 문화 등 우리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해설사 등 다양하다고 들었다. 영어에 서투른 우리가 과연 그들과 만나 얼마나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그곳에서 만나 여러 나라의 해설사들은 이미 이 대회에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 느끼는 따스함 덕분에 우리들은 서서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가 그들의 동료로 따뜻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우리의 서툰 영어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한마디라도 더 들어주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걱정했던 것들이 참 의미가 없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분야가 틀리면 어떻고 언어가 틀리면 어떤가? 그들도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소개하고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해설사는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직업이 아니다. 풍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쉽게 상대에게 전달할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운스빌에서 만난 해설사들은 그런 마음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언어니, 분야니 고민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우리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가난한 나라들의 해설가들을 초청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았다. 그리 화려하지도, 비싸지도 않은 물건들이지만, 그 수익금으로 더 많은 나라의 해설가들을 초청하는데 쓰인다는 설명을 듣고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새롭게 느꼈다.
이번 해설가대회에 참석하면서 정말 멋진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이국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해설가들의 일터에서 그들의 해설도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그 해설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들은 나를 위해 그 나름의 방법으로 최대한 내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줄 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들이 우리 한국에 왔을 때 우리 한국의 숲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이번 대회는 나에게 폭넓은 눈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줬고, 고마운 대회였다. 만약 내년에도 참가할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들에게 여유로운 배려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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