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떠난 산사음악회
김 미 순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엊저녁 잠들기 전에 신랑이 말했다
“내일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 일어나요.” “왜?”
“봉화 청량사에서 산사음악회 하는데 가려고!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테니!”.
모처럼 여행, 기대되는 산사음악회가 머리에 맴도는 바람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종각역에 내려 인사동안내판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한때 늘 오가던 길임에도 낯설었다. 앞서는 신랑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조계사 앞 관광버스 있는 곳에 다다르니 먼저 온 많은 여인들이 얼굴에 홍조를 띤 모습으로 목소리 높여 서로 잡고 안고 인사를 하며 난리들이다.
신랑이 안내자에게 예약을 확인하고 우리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런데 뒤에 앉은 일행들은 이런 여행이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서로 싸온 음식이 많은 듯 먹고 떠들더니 미안하다고 비스켓 한 봉을 건네주며 앞쪽에 있는 자기 일행과 자리를 바꿔 달랜다.
너무 떠들어대기 때문에 신랑이 약간 마음이 상해 있는 듯해 내가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한번 자리 잡았다가 다시 일어나기가 좀 번거로웠기 때문에 신랑한테 미안해서
“종일 시달릴 뻔 했는데 다행이죠.”
하고 웃어보였다. 남편이 창밖을 내다보면서 설명한다.
“저기 보이는 저 다리 근방이 목계나루터인데 강원도에서 벌목해서 뗏목을 물에 띄우고 내려오다가 처음으로 쉬어가던 곳이야.” 남한강 이포나루터에 대해서도 얘기 해준다. 전에 신랑이 운전을 할 때는 이포나루터까지 막국수 먹으러 다녀오기도 했단다. 옛날을 회상하며 신나게 설명하는 신랑의 기분을 맞추려 “당신은 아는 것도 많네!”해주었더니 신랑은 내 마음을 헤아린 듯 “당신 속 많이 썩였지.”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꺼내놓고 나니 내내 마음이 훈훈하였다. 생각하니 젊은 시절이 건강해서 좋았던 걸 이해하지 못해 서로 많이 불화를 보이기도 했다.
창밖 이정표에 봉화라는 표지가 보인다. TV로 수없이 듣고 보던 봉화, 감회가 새롭다. 마침내 그 멀리 달려와서 청량산주차장에 멈춘다. 차에서 내려 한 바퀴 획 돌면서 쳐다보니 높다란 병풍을 쳐놓은 듯 가까이 높은 산들이 빙 둘러있다. 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더욱 시원한 자연을 만끽하게 한다. 그런데 그 폭포는 인공으로 만들었다 해서 놀랐다.
이 모든 기쁨 등을 부처님께 예배드려 감사했다. 일행은 식사하러 길을 내려가는데 나는 부처님을 먼저 뵈우러 산사로 향했다. 오르는 길이 20도는 되는 듯싶다. 어찌나 가파른지 마음속으로 오르는 것도 정성이라 하셨는데 뭐 이쯤이야! 했지만 많이 힘들었다.
허리를 펴고 건너다보니 ‘산약초 남자의 집’이란 간판이 보여 그 쪽으로 갔더니 “쉬어가세요. 약초 한잔 들고 가세요.” 한다. 얼마나 반가운지 냉큼 들어가 차 한 잔 받아들고 자리 잡았다. 집안을 둘러보노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나하나가 작품이고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신랑은 신이 나서 내가 차를 건네주어도 마다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주인이 나오더니 부른다.
“남의 작품인데 작가한테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해야지,” 하며 촬영을 제지했다. “아 네, 둘러봐도 안 계셔서요.” 하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약초를 달게 마시고 오천 원짜리 한 장 뽑아서 주머니에 넣어주고 나왔다. 산사에 돌아와 남편이 촬영하기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음악회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자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내리는 비로 속옷까지 다 젖어버렸다. 그래도 그 열기는 대단하여서 옷 젖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우비를 장만해와 편히 음악회에 전념한다. 나는 우산을 챙겼으나 우산을 펴면 뒤에서 안 보인다고 아우성이고 이런 분위기에 익숙지 못한 내가 문화생활을 얼마나 멀리 해왔는가 느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극성이라 생각했지만, 리허설 할 때부터 관중들의 격한 반응과 환호는 대단했다. 나도 옷이야 젖거나 말거나 흥이 나서 안치환이 노래할 때는 눈물이 났다. 내 반응에 나도 놀라서 신랑의 손을 꼭 쥐었다. 오랫동안 이 사람과 함께 하고자 다짐하며…….
비가 와서 길은 미끄러웠으나 현지 경찰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자동차 불빛으로 길을 비춰주며 안전을 책임져준 경찰들에게 감사드린다.
집에 도착해서 자리에 누워 생각하니 꿈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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