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기쁨 반 아쉬움 반
김 정 임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제 학업 수기를 여러 후배님들 앞에 들려 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다음은 제가 4년간 상록에서 배운 과정을 여러분들도 뒤를 밟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마치고 영광스런 졸업을 하라는 뜻으로 들려 드립니다.
어느 해 4월 어느 날, 회기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다 허름한 창에 붙어있는 상록이름을 알았습니다.
상록야학 중·고등학교, 수업료 전액 무료. 전화 968 - 1923!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일단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였습니다.
다음 날 근부 중 몰래 야학으로 몇 번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곳에서 환승을 위해 서 있을 때마다 변함없이 그 창문의 문구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전화번호는 이미 머릿속에 새겨져있음에 늦은 밤 귀가 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전화번호를 눌렀을 때, “여보세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엇보다 수업료가 전액 무료라는 문구가 믿음이 서지 않아서, 시쿤둥한 어조로 몇 가지 확인한 결과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설명과 8월말 입학한다면서 입학날 꼭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더욱 급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지면서 통화를 끝내고 벽을 바라보며 잠시 묵상을 했습니다.
참아야 했습니다.
그럭저럭 기다림끝에 5개월이 지나갔고 입학식장에 들어 선 나는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이지만, 강렬하고 푸른 눈빛과 두 개의 당나귀 귀는 모두가 나와 같았습니다.
모두는 이 하나의 마음으로 칠판을 바라보며 설렘과 두려움으로 입학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중3, 고3 선배님들이 지닌 여유와 넉넉함이 부럽기만 하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과연 내게도 저분들처럼 졸업식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꿈만 같았던 저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초에 그만 불의의 사고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런 나에게 황기연 선생님께서 고입자격 검정고시 응시원서를 써서 접수하라는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그 전화를 받았을 때,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겨우 소문자, 대문자 배우다 쓰러진 저는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다 잊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저로서는 선생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자리에 앉지를 못하는 38킬로그램 마른 체중의 몸이라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에 못이기는 척 시험에 임한 것인데 다행이도 합격하여 그 영광을 황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공부는 열심히 하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이번엔 학기 초에 어머님께서 갑자기 중환을 얻게 되어 그 어머님을 돌봐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긴 세월 학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내 팔자는 무료공부조차 할 복도 안 되나싶었습니다.
내심 슬픔을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며 먼 길 떠날 어머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드렸지만, 어머님은 병원생활 13개월을 마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 먼 이상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용기 백 배 내어 고입에 시도했던 과정을 생각하고 다시 상록의 교정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것임에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밟히고 밟힌 잡초만큼 강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저의 학업이었습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과 졸업생 학우 여러분들께 오늘, 진심 담긴 저의 마음을 다하여 졸업의 영광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동안 먹어도 속이 허했고, 입어도 늘상 시리고 떨렸으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려면 늘상 진땀으로 흠뻑 젖었고, 더듬더듬 어눌한 언어 때문에 자신 없고 축 처진 삶을 살았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검정고시 시험 직전엔 밤낮도 없이 붉은 휴일도 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선생님들과 공부를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저녁식사도 거르시고 밤잠 설치며 눈비가 내리고, 태풍이 쳐들어도 몸으로 부대끼며 머리카락 휘날리며 비오 듯 쏟아지는 땀 마다않고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열정에 힘입어 우리는 두 번의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시원섭섭합니다.
상록이란 학교에서 문학, 수학, 세계사, 한국사, 가정과학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게 제가 공부를 해서 알아갈수록 한편으로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갔습니다.
너무 몰라서 영양실조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저 밥만 세 때 잘 먹으면 잘 크는 줄 알았던 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 알게 되었습니다.
영양 생각 없이 아무렇게 키운 딸을 생각하니 끔찍하리만큼 무서운 지난날이었던 것에 사랑스런 딸아이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게 국어시간이면, 그 시간이 너무 좋아 행복했고, 미술시간엔 마치 자신이 유럽 로마에 가 있는 듯! 아무튼 이제야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먹어도 배부르고 아무 것이나 걸쳐도 부끄럽지 않으며, 나뭇잎을 보아도 작은 풀섶의 꽃잎을 보아도 모두가 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부정보다 긍정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상록이란 학교를 창설해 주신 박학선 교장선생님과 최대천 교감선생님, 황기연 담임선생님, 박용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상록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안쓰러움과 측은함으로 마음의 한 구석에 짠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아낌없이 성원해 주신 모든 선생님과 은인들이 계셨기에 이 행복은 끝나지 않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좋은 결실을 맺게 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건강과 행복이 튼실한 평화의 가정을 이루시게 두 손 모아 기도 올립니다.
저는 상록인으로서 거듭 태어나 자랑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상록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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