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유린원광복지원 자원봉사자
배 희 선
손님들 머리를 만져주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나는
일명 가방끈이 짧다는 것을 속병처럼 안고 살아왔다.
헝클어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
흡족한 모습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나는 그 손님보다도 더 행복했다.
어릴 적 초등학교를 중곡동에서 다녔다.
한창 중곡동이 개발되던 때라, 처음에는 5 ~ 60명 되던 학생들이
자꾸 전학 오는 학생들 때문에 의자에 다 앉지도 못하고 통로에까지 앉아서 콩나물시루 같은 수업을 해야 했다. 정작 졸업을 할 때에는 반 친구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학생 수가 불어있었다.
미용실에 내 손님들이 연말쯤 되면 하는 주문이 있다.
“동창회에 가는데 예쁘게 해주세요!”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반갑지가 않았다.
어떤 친구들은 초등학교 동창회를 재미있게 한다고 자랑도 하던데,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은 동창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구나 고등학교 동창회에 간다고?
“예쁘게 해주세요.”
하면,
“네 좋으시겠어요.”
하면서도 질투가 나곤 했었다.
‘언제 나도 중․고등학교 공부를 하고 동창회를 해봤으면!’
이런 상상을 하며 살았다. 그런 나는 오빠들이 학기를 마치고 버리는 교과서가 나오면
언젠가 꼭 공부를 하겠다고 쌓아두었던 터다.
평소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보면 누군가가 잠도 자지 않고
현관문에 덕지덕지 부치고 간 광고지가 나를 학교로 안내하였다.
근무 중 몰래 야학으로 몇 번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늦은 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전화번호를 눌렀을 때,
“여보세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업료가 전액 무료라는 문구가 믿음이 서지 않아서 시큰둥한 어조로
몇 가지 확인한 결과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설명과 8월말 입학한다면서 예비소집에 꼭 오라는 말도 했다.
나는 눈비가 내리고, 태풍이 쳐들어도 몸으로 부대끼며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열정에 힘입어 두 번의 검정고시를 통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상록중·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지금 58살이지만 내친김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그 강열했던 열망! 나도 동창회에 나갈 날이 기다려진다.
동창회 회장한테 연락이 왔다.
“7월 18일 오후 5시에 동부시장 부근에서 중 34회, 고 26회 동창회를 합니다.”
나의 꿈은 두 개가 이루어졌다.
하나는 중, 고등학교를 모두 마치고 대학에 간 것이고, 또 하나는 동창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상록야학이라는 배움의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그대들이 있어 행복하다.
나에게 동창회를 만들어 준 야학이 참 고맙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도 만나는 누구에게나 말해주고 싶다.
늦었지만 시작하는 그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정말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누구나 많은 길을 돌아왔을지라도 새로 시작해 보라고 하고 싶다.
< 상록야학 입학문의 : 968-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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