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의 상춘곡
박 용 준
진달래, 벚꽃, 생강나무 노란꽃 기웃거리는 봄의 문턱에서
경애하는 구청 직원들과 나서는 배낭여행은 마음을 한껏 쳐올려 하늘 드높이 걸리게 한다.
해를 곁에 둔 구름은 형형색색 제 좋아라 어울리고
우리 일행은 서로 배려하는 가운데 든든하고 믿음직한 기분 만끽하며 제2중부고속도로를 내달린다.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곳이 충청북도라던가?
그래서 그런지 인심 후하고 사람 선량한 곳이다.
이곳 옥천군 이원묘목시장에 가면, 토양 좋고 기후가 맑아서인지
품종 좋은 묘목의 집산지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근동사람들이 힘을 합해 개최하는 묘목축제가 한창이다.
중국고사의 오류선생 도연명도 생각하고
그의 시에 등장하는 무릉도원도 꿈꾸면서 자두, 복숭아, 매실, 살구 해서 몇 그루 사둔다.
시골집 산소 앞에 심어두고 보자는 뜻이다.
아쉽다면 축제장 안에서 구한 묘목가격이
축제장 밖에서 추가로 구매한 묘목값보다 훨씬 비싸다.
행정관청이 축제장에서 외부사람들에게 파는 묘목값을 따져보니
마치 시중잡배의 바가지상혼 본때를 홍보하는 듯하다.
배반감으로 배가 끓지만 다음 목적지 전주로 향한다.
한옥으로 지은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전주한옥마을로 향한다.
의외로 많은 인파들이 거리에 출렁이고,
물결처럼 내닫는 도로를 따라 각 로터리 이정표마다 한옥마을로 안내하는 문구들이
빠짐없이 알아보기 좋게 얼굴을 치장하고 친절하게 길을 가르킨다.
우로, 좌로 아기자기하게 상가와 기념관과 먹거리들이 얼굴 맞대고
우릴 손짓하는 데를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 들어간 곳이 한옥민박이다.
단아한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토방과 댓돌이 있고,
실내 공간도 한옥마을을 담아내고 있다.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저렴한 방값과 인심 좋아 보이는 핸섬한 여주인의 미소가 일품이다.
전주의 역사만큼이나 늙수구레한 나무들이 곳곳에 도열하여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태조왕 이성계의 영정과 후대 임금들의 면면이,
먼 길 달려 온 이방인들에게 푸근히 인사를 건넨다.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의 인상일 뿐이다.
걸치고 있는 의관만 아니라면!
이렇게 조성하고 관리하여 많은 이들에게 역사도 일깨우고
이씨 문중의 유구하고 경외로운 저력을 후광으로 서리며 비쳐나고 있다.
서울막걸리에 익숙한 나에게
전주막걸리는 이른 봄 못자리를 밟는 것 같은 선듯선듯 묘한 느낌이지만
정철 관동별곡의 후사에 나오시는 어느 도인과 주고받는 신선주나 다름이 없다.
비우는 막걸릿주전자 숫자에 따라 나오는
이색적 안주를 기대하는 일행의 눈빛에 부응하느라 냉큼냉큼 마셔댄다.
그리고는 그대로 서리 맞은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고!
예향의 도시 전주답게 맛보는 음식이나,
바라보는 자연이나,
맞이 하는 이들이나
모두
우아하고
고풍스럽고
예스럽다.
꿈길에 흘얼흥얼 꽃밭을 누비는 나비처럼 전주를 즈려밟다가 깨었다.
아쉽다. 다시 서천으로 출발이다.
아롱대는 아지랑이 따라 구불구불 국도를 타고
서천으로 가는 길, 길 가로수 벚꽃이 연분홍으로 세상을 덮는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드라운 그 꽃 연분홍 새잎에 맡기고 싶다.
바닷바람이 세찬 것이 서천이다.
마침 3월 29일부터 열리는 서천주꾸미 축제가 한창이다.
맞이하는 한국수 축제위원장님의 축배와 더불어
주꾸미무침과 샤브샤브로 속을 채웠다.
성의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계산은 일행이 하려는 우리를 극구 만류하는 위원장님께서는
그 바쁜 와중에도 민박까지 알선해준다.
지역축제로는 벌써 15번째라는
많이 알려진 행사장 무대에 올라가 고향무정 한 곡 무아지경으로 날리고
사진 한 장 찰칵!
역시 난 세월을 잘못만난 거지,
무대체질이 아닌가?
즐거운 착각 속에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온몸의 열기를 닦아내고,
스며오는 바다냄새로 탁한 정신을 일깨운다.
어판장으로 고고! 배에서 끌어 내리자마자
위탁판매에 들어온 꽃게 한 상자 들춰 메고 숙소로 들어와
알이 통통한 속살에 내 식욕을 채운다.
샛노란 알, 새하얀 살, 알록달록 게맛살, 아롱아롱 마음이 벌겋게 동한다.
각자 축제장에서 주꾸미 한두 꾸러미 구입하고,
위원장님이 마련한 선물까지 양손에 가득 들고
넓은 축제장 광장을 가로지르며 서천땅 주인인 양 어깨에 힘을 주며 걸어 나왔다.
“편히 들 가슈, 찾아 줘 감사하구유, 5월 중순에 열리는 광어축제에도 꼭 들르슈!”
위원장님의 인사를 뒤로하고
그 감사함으로 흐믓해 하며 차에 오른다.
이젠 어느 정도 돌았는가?
동료에게 맡기고 온 평소 하던 업무가 궁금하기도 하고
직장 동료도 그리워진다.
이젠 올라가 다시 일을 해야겠다.
그보다도 가족의 곁으로 달려가 지친 다리 좀 풀고 집밥으로 저녁을 먹어야겠다.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고, 내 집이 최고라던 말을 떠올린다.
이번 배낭여행을 통해 타부서 직원들과 몇 년을 같이 한 것처럼 가까워져서 좋았고,
각자 맡은 업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저 맡은 바에 충실하리라 마음먹으며 구민의 고마움도 느낀다.
구민이라는 고객이 있어 나에게 일용할 양식과 삶의 근원이 펼쳐지는 곳이지.
스스로 열심히 하고자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참으로 고맙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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