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에 젖어들며
고21회 김 길 녀
어느 날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길가에 상록학교 학생모집광고가 붙어서 나 좀 봐달라는 듯 방긋이 웃었다.
얼른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해서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결석하기가 일쑤였던 어린시절,
배움보다 집안일이 먼저였던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늘 가슴속에 안고 살아왔다.
벽보를 보고 찾아갈 수도 안 찾아갈 수도 없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살아가는 현실이 학교에 다니기엔 정말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생각을 접어 두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어려운 역경속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월을 잊고 나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느 새 아이들은 다 성장하여 내 손이 필요 없게 된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20년이란 세월이 지나지 않았는가.
너무 멀리 온 세월이,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싶어 또 망설이게 됐다.
그동안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세월이 우리가정도 나도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금이야 말로 바로 기회가 아닌가 싶어 등록을 했다.
배운다는 것은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나무의 속눈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뭇가지에 새록새록 싹이 트기를 기다리 듯
내 마음도 무언가 준비를 하고 욕구가 생겼다.
그야말로 배움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머릿속에는 잘 안 들어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결 가벼운 것을 느낀다.
상록의 문을 두드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모든 선생님, 어머니 학생들, 아버님학생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까지 배우는데 열정이 높았고, 정말 공부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모두 한마음이다. 보기에도 너무 흐뭇하다.
나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삭막하고 황패해가던 자기 회복을 위해
오손도속 공부하는 모습들, 하나 둘 실현 하고자
모두들 열망하고 있는 모습이 있는 상록은 누가 봐도 살아있고
서정이 촉촉이 젖어드는 공간이다.
바로 여기가 사랑의 텃밭이기도 하다.
상록은 내 삶 속에 물들어가고 있다.
지난날 어둡고 마음이 가난할 때의 찌든 때를 벗고 새로운 모습,
새로운 마음으로 살맛나는 상록의 공동체에서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다.
배움 속에서 참뜻을 이루고자
겸손한 자세와 사랑을 실천하는 상록이기도 하다.
정성된 노력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지난 세월 삶에 굴곡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바로 세워 다듬고 마음을 정리하여 새롭게 나아가야겠다.
소중하고 고귀하게 받은 선물을 곱게 접어 간직하고
언제라도 아쉬울 때 펼쳐 사용할 것을 다짐해본다.
현대 사회에 살면서 쓴맛 단맛 다 겪게 되지만
상록안에서 힘든 줄 모르고 모두들
잘 이겨 내고 있는 모습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이곳은 인간답게 사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이 모두는 상록의 선생님들께서 많은 노고와
사랑을 베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특히 우리 담임이신 김동철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어머니 학생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이해도 잘하시는지,
그 환하고 정겨운 미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신다.
우리 선생님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아쉬운 건 벌써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다.
상록에 온 지 엊그제 같은데 졸업이라니 세월이 너무 야속하고 무심한 것 같다.
선생님들께서는 개인적으로 바쁘신 일도 많으실 텐데
피곤함을 무릎 쓰고 봉사하시는 걸 보니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우리 선생님 모든 분들께 정말 무병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이루시길 빈다.
그리고 가정에도 화목과 좋은 일로 행복하시라고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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