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많은 삶을 위하여
전직교사 김 소 영
아무 주제나 좋으니 교지에 실을 글 써내라는 말에 종잡을 수 없었다.
딱딱한 글만 쓰고 있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예전에는 거침없이 써냈던 말랑말랑한 글을 쓰기가 참 힘들었던 까닭이다.
내가 아직 나이 어리긴 하지만 ‘지나치게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라고 말한 위기철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나로서는 세상을 느끼지 못할 만큼 미숙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건 그런 내가 지금까지 바라본 세상은 참 딱딱한 세상이었다.
어깨에 힘주고 살지 않으면 달려가는 다른 이들의 힘준 어깨에 치여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 십상이고, 빈틈없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낙오되는 그런 세상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미없는, 너무나도 정나미 떨어지는 세상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 대열 속에 파묻혀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살아가고 있고,
인생이라는 주머니 속에 이 것, 저 것 채워 넣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나를 보니 참 서글펐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치켜세우던 사람들의 말은 다 사라져버리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혼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부처를 바라보는 분들이나,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분들의 입에서 나옴직한 위의 말은
출세의 보증수표인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회사를 차린
CEO 안철수가 그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언급한 문구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오늘날 세상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삶의 방식이다.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비현실적인 삶을, 허점 많은 삶을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상록을 접하면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허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록에서의 생활은 안철수가 표현한 바와 같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가치를 따라’가고 있는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허점 많은 상록과 같은 곳이 빈틈없어 보이는 이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자그마한 허점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낸 허점이 살맛나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점 많은 삶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걷고, 걷고 또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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