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애환사(哀歡詞) 4
김 복 례
그 뒤로 중학교 시험 치는 날이 다가왔다.
나보다 한 살 위인 귀례와 읍내에 가 하룻밤 자고
시험을 봐야 되는데 돈 대신 옆집에 가서 쌀 닷 되를 꾸어다 머리에 이어주시면서,
“가서 뚝 떨어져버려라.”
하시었다. 그만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저런 어머니는 죽어버려야 되.”
하며 땅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어린 생각에 ‘남의 엄마들은 떨어질까 엿도 사주고
읍내까지 따라와 준 부모도 있는데!’ 하면서 우니까,
“오죽하면 그러겠냐? 가서 잘 보고 오너라.”
하고 달래셨다.
눈물을 닦고 쌀을 이고 정읍까지 걸어서 한 시간 반에 친척집에 도착했다.
하룻밤 자고 시험을 치렀다.
시험에 합격하고 원서를 낼 때가 되었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조르며 울고, 부모님들은 말이 없었다.
학교 선생님은
“너희 부모님께 말씀드렸니? 중학교 보내 주신대?”
물으셨다. 내가 고개만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몹시 안쓰러우셨든지
저녁에 우리 집에 오셔서 아빠를 설득하시는 것이었다.
며칠을 찾아오시니까 아버님께서
“송아지라도 팔아야겠구먼.”
하셨다. 집에 돈 되는 것은
송아지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였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송아지를 팔았다.
8천원 받고 등록금 2780원, 책은 1년 선배인 영애언니한테서 물려받았다.
이렇게 힘들게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내 눈은 극히 나빴다.
안질도 잘 걸리고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자기한테 옮길까봐 자꾸 피하곤 했다.
그리고 눈이 튀어나오려고 하고 아프고,
책 몇 장만 보면 피로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땐 두 손으로 눈을 꾹 누르고 있으면 좀 시원해지곤 했다.
그래도 3년 우등상을 탄 걸 보면 노력도 많이 했고, 머리도 좋은 편이었나 보다.
중학교시절 서정희 선생님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
서정주 시인의 여동생이시다.
가끔 우리에게 ‘국화 옆에서’를 낭송하시며 설명해 주시던 모습,
임신해서 배가 불룩 나온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너 달 집에서 일을 돌보다 보니 꾀가 났다.
그날은 6월 말일이었다.
모내기를 하다가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 논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저는 죽어도 농사일은 못하겠어요. 학원비 좀 주세요. 양재학원에 가게요.”
하고 말씀드렸다.
“그래라. 이까짓 농사 지어봤자 품삯도 안 나오는 것. 너희까지 고생시켜야 되겠냐?”
하시고는 학원에 보내주셨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결혼해서
3녀1남을 둔 엄마로서 두 딸 출가시키고 아직 두 명이 공부 중이다.
그리고 뒤늦게 내가 상록에 와서 공부하게 되니 정말로 기쁘다.
책가방 메고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못 이룬 꿈 펼치며 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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