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가을꽃
오 세 문
어쩌다 내 피어날 때를 놓치고
봄에 피는 꽃들을 부러워하면서 수십 년을
산 넘고 강 건너 거센 세파(世波)에 휘달려왔다.
마침내 자리를 잡고 간신히 싹을 틔웠고,
그 새싹이 고개를 넌지시 내민 곳은 휘경동 어느 언저리였다.
고개를 들고 보니 늦가을,
거세고 세찬 비바람이 부담스럽다.
이런 내가 다시 예쁜 자태를 뽐내며
그윽한 향기를 겸비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반신반의(半信半疑)해본다.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를
오늘은 얼마나 많이 맞아야 내 가슴의 갈증을 풀어볼 수 있을까?
빨주노초 예쁜 저 꽃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비 한 방울이라도 자신의 몸에 더 맞으려고 혈안이다.
내 옆자리 벗님들!
내 자리가 좀 비좁다하여 조금은 짜증스러워 한다.
그리고 언제나 내 자리가 넓어지나 기웃거린다.
중추절이 지나면, 아니 양력설이 지나면 넓어지나!
그렇게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내 마음은 변하고 말았다.
지금은 세찬 비바람 견뎌내고 새싹의 꿈을 키우며 지낸다.
그런데 한 송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비워버린 몇몇 빨주노초들! 난 하나 둘씩
옆자리가 텅 비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을걷이 끝난 들판을 보듯이 내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
과연 이렇게 느끼는 것은 정작 내 마음이 갈대라서 그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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