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야학’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10년째 봉사] 희망심는 ‘야학 대물림’
[사회] 2002년 05월 15일 (수) 12:35
“야학으로 일군 배움의 꿈을 이제는 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한 40대 공무원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야학 대물림’을 하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 중랑구청 총무과 9급 박용준씨(43·서울 이문1동)에게 휘경 1동 ‘상록야학’은 모교인 동시에 지금은 교사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곳이다.1993년 상록야학을 졸업한 박씨는 그해 9월부터 지금까지 만 10년째 매주 수·목·금요일 밤마다 이 곳을 찾아 130여명의 학생들에게 국어 도덕 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박씨는 야학에서 발행하는 교지 ‘푸른그루’와 월간신문 ‘우리들의 이야기’도 도맡아 만들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한 박씨는 20세 때 고향인 충남 서산을 떠나 도시로 나왔다.인천과 서울 등지를 떠돌면서 닥치는 대로 막일을 했다.공사장 인부,배관공,보일러공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생활에 안정을 찾기 시작한 시기는 89년 봄 중랑구청 초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후부터.단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은 벗어났지만 배우지 못한 한은 더욱 크게 쌓여갔다.학업에 대한 목마름으로 고심하던 박씨가 상록야학과 인연을 맺은 때는 같은 해 가을.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가 전봇대에 붙어 있는 ‘상록야학 학생모집’이라는 광고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내가 이 나이에 공부를 할 수 있을까’.망설임 끝에 박씨는 야학의 문을 두드렸다.시간이 지날수록 배움에 대한 열정과 문학을 향한 설렘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부지런히 책과 씨름한 끝에 91년과 93년에 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했다.박씨의 주경야독이 4년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이듬해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에 합격하는 기쁨도 맛봤다.그리고 스스로의 인생을 뒤돌아 보던 박씨는 문득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워 배움의 길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주저할 것도 없었다.그때부터 그는 모교인 상록야학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10대 불우 청소년에서부터 50대 주부까지 다양하다.지금까지 박씨에게서 배운 학생만도 수백명.
전국 공무원 문예대전 등에서 입상한 뒤 한 대학교수로부터 “야학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박씨는 “야학에서 배우면서 좀더 충실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며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야학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은 소중한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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