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검정고시 즈음... 야학에 대한 추억과 일상의 푸념...
이름: 농부 광웅
등록일: 2008-04-14 04:23
조회수: 3548 / 추천수: 767
어제 제 아내(이런 표현 어색함...)와 통화를 하다 검정고시 응원을 간다기에 생각해보니 전에 동철샘이 올린 검정고시 안내가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야학에서 얻을 수 있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인 멋진 검시합격증을 위한 시험이니까요...
신입교사로 온 첫 해 여러 샘들이 검정고시 응원을 가자는데 대체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시험 보러 가는 사람들한테 정신 사납게 무슨 응원 이러면서 쨌던 기억... 그리고 담임으로 검시 응원을 담당하던 시절 한 사람이라도 우리 반 응원에 오게 하기 위해 온갖 공갈 협박을 자행하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네요.
역시 그곳에 머물러 있던 시절보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는 야학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20대 청춘?의 절반 가량을 쏟아부은 곳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도 강한 것 같습니다. 2달 교육에 한 달 반을 안 나가고 몇 번의 술자리에서 살아남아 삐대기로 버텨낸 신입교육... 나보고 오래 못 갈 거라고 공개적으로 장담한 현희의 꾸사리... 3지망도 다 안 되고 4지망 국사 시도 그러나 다시 좌절 그리고 결국 5지망 도덕으로 시작한 야학 생활인데 말이죠... 희대의 엉망진창 신입교사였는데, 몇 년 후 다른 신입들한테 제대로 안 했다고 총대매고 등떠밀던 기억도 있네요... 수많았던 술 자리... 세상의 고민을 다 떠안은냥 밤새 입싸움을 하기도 하고 때론 눈물 보이는 선생님 등을 두들겨주기도 하고 야학의 누군가를 많이 미워하기도 하고... 제 인생 4년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네요... 겨우 4년짜리 교사가 이런 복잡한 애증이 함께 하는데 보다 장기근속?한 분들의 정성과 애환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네요...
동생벌 샘들을 하도 다그쳤던 저라 그런가... 형님벌 샘들에게 너무 편하게 대해서 그랬는지...
저의 별난, 구부러지기 싫은 성격 때문인지 교사회의든 술자리든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웃고 울고 했네요...
쓰다보니 제 스스로도 저답지 않은 글을 쓰는 것 같아 어색함이 만발~~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보여주는 건 저라는 사람이 야학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야학의 영향력이 제 안에서 작용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곳에서 멋들어진 활동을 하는 현직 샘들에 대한 부러움도 숨길 수 없내요...
저는 현재 이곳에서 교회에서 주관하는 한글학교에서 애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제발 관두라는 지인들의 협박스러운 충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중고등학교 애들을 직접 대하고 있네요... 매주 토요일 오전에 한 번 두 시간 가량 가르치는 학교라서 야학의 강도에 비할바는 아님니다만 이곳에서도 저의 별난 성격은 부드러운 흐름만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크리스찬 리더를 키우겠다고 천명한 교회와 99% 교인 선생님들... 하지만 신앙이 아닌 한글을 원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기만하고 교묘히 전도의 목적을 드러내는 학교의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wrong time, wrong place에 있는 제 자신이 보이기도 하지만 교사 모집시 분명히 신앙을 배제한다던 약속은 간데없고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수업을 보고 있노라면 뿔난 심보가 발동하곤 합니다.
실제로 한교가 운영되는 건 8개월 남짓이라 나머지 기간 동안에도 수업을 하고 싶다고 건의하고 학부모와 아이들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교회에서는 장소를 제공해줄 수 없다는 회신을 받고는 그만 실소가 흘러나왔습니다. 그곳에는 만인에게 열린 교회도 없었고, 비교도 선생님이 교회를 이용하는 것 자체도 달갑지 않았나봅니다. 결국 그 아이들을 저희 집 거실에서 한글에서 가르치기로 결정하고 나니 그 동안 꿈꿔왔던 상록학교 텍사스 지부 설립의 목표가 가시화 되는 것 같은 환상에 젖고 말았습니다. 제한된 유학 시기 동안 얼마나 그 꿈에 근접할 지 미지수이지만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하네요.
주말에 학교에 홀로 앉아 야학을 반추하고 푸념도 한껏 늘어놓고 보니 더욱 더 한국에 가고 싶어지내요.
일일이 안부를 전할 수 없는 저를 이해해주시고, 다들 건강히 규칙적인 음주로 인생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한 달 안으로 줄어든 아내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그 동안 엄청나게 받아놓은 야한 비디오를 지울 걱정이나 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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