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우회의 따뜻한 겨울이야기
-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남몰래 야학에 17년째 월동연료비를 지원해오는 더불어 사는
용우회의 따뜻한 겨울이야기는 동대문구의 상록야학에서 시작됩니다.
1976년 개교한 상록야학은
배움을 원하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고
무료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지금은 나이어린 학생들보다는
6~70년대 개발의 그늘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하며 가정을 이루어 오신
50이 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진 길 마른 길 온갖 인생경험 높이시었으나
정작 제철 놓친 자신의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셨던
배움의 갈증이 많으신 분들이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추운 날,
이들을 위한 야학에는 냉기가 돌고
별다른 난방시설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석유 몇 통씩 받아다 난로를 켜는데
비싼 연료비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초순으로 기억됩니다.
저녁 찬바람이 잦아들고 어둠 서리 추녀 끝에 내려앉을 즈음
우리 상록야학에 조용히 문을 두드린 반가운 손님들이 계셨습니다.
동대문구 환경미화원들의 모임인
용우회(회장 김종숙 67세)입니다.
야학에서 추위에 떨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따스한 교실에서 공부하라고
연료비를 들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몇 군데 달려오던 발길도 멈춘 야박한 요즘 세상에
용우회는 가물에 소나기처럼 정성어린 마음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더구나 용우회 김종숙 회장님은 67세의 연세에
아파트경비를 서면서 버는 얼마 안 되는 박봉으로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날 걸어 오르기도 버거운 3층까지
귤 박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 계단을 밟아 올라오셨습니다.
힘겨운 청소업무에 야근으로 무거운 몸을 한 채 달려오신 것입니다.
세상의 아래에서 궂은 업무 마다않고
맑고 밝은 세상 말끔하게 가꾸며 살아오신
이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들국화 무리무리 피어나는 향기처럼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밤새 어질러진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 반듯한 자리로 만드시며
살기편한 거리환경을 가꾸느라 밤낮으로 종종대던 분들이셨습니다.
우리는 앉으시라고 의자를 권했지만
작은 교무실 이곳저곳 살피시기만 할 뿐
막 청소자리에서 달려온 그 옷차림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
앉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자고 권했을 때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면서 겸연쩍게 봉투를 내미시는데
그 주름 진 손은 겸손함 가득 조심스레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용우회 님들의 기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어가는 겨울밤
상록야학 교무실에 내리 붇는 형광등 불빛 파장보다도 더 큰 감동이었고,
창밖에 내리는 흰 눈처럼 더욱 순수하게 빛났습니다.
동대문 환경미화원들의 모임인 용우회가
17년간 상록야학에 손을 내밀어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소중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의 주인공은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김길주(58세) 님입니다.
김길주 님은 20년 전
상록중학교 16회에 입학하여 공부한 모범학생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동생들을 가르치느라고
정작 자신은 하지 못했던 공부를 늦게라도 하겠다며
야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날부터 김 총무님은 동대문구 환경미화원으로,
남들이 기피하는 거친 일을 하면서
시간 나는 틈틈이 중학교 2년을 우수하게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고등학교 2년을 더 공부하여
만 4년을 마무리하고 영광스런 졸업을 하셨습니다.
김길주 님은 졸업을 하자말자
그때부터 자신이 야학에서 공부하면서 받은
사랑과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없을까
길을 찾다가 수업 중에 추위로 떨던 뼈 시린 겨울을 떠올렸습니다.
새어 든 찬바람에 얼어 곱은 손 호호 불던 그 겨울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이에 그는 함께 일 하는 동료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상록야학을 도와줍시다.
대가도 명예도 무엇 하나 바람 없이 가르치며
배우고 봉사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낡은 건물 유리창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이치고,
오래 되어 삐걱대는 책상에서 제대로 된 난방시설도 없이
뒤늦은 배움의 갈증을 풀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이들에게 겨울을 따뜻하게 이겨내도록
난방비를 지원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길주 님이 모범 환경미화원으로
선후배 공경하고 사랑할 줄 알며
더불어 같이 봉사해오던 일과
야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하던 모습을
눈여겨보던 회원들은 이 제안을 듣자
모두 찬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환경미화원 18명으로 구성된 용우회는
1995년부터 흔연히 상록야학에 연료비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열혈 봉사자 상록선생님들의 고마움에 비하면
우리들의 참여는 아주 작아서 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풍요롭지 못한 여건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최선을 다하며 배우시는 후배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추위도 마다않고 감기는 눈꺼풀을 떠 고이는
후배들이 모두 포기하지 않고 배워
영광스런 졸업을 바랄 뿐입니다.”
라며 후배들에 대한 충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년을 얼마 안 남겨둔 김길주 님은
절약정신 또한 남다르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도
“절약하고 아껴 쓰고, 틈만 난다면
사회에 봉사하며 살도록 하라.”
고 훈육하는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상스런 분입니다.
부전자전 대물림이랄까 아들 또한
“이 세상에서 청소를 하시는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더 존경합니다.”
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믿음직스러웠고
오히려 그런 아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힘이 솟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새벽 일터로 나가는 남편을 위해
불평 없이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느라
곱던 얼굴 주름 깊어 살가운 부인에게
참고 살아오며 수고해줘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김길주 님의 남을 위한 봉사정신은
역시 수신제가 하는 가족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이렇듯 화기애애한 가족의 믿음이 숨 쉬고 있는 가정에서라야
사회를 사랑하고 나누는 마음이 깃들 것이라 봅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이는 지금 사회에서는,
용우회에서 들고 온 그 금액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상록야학의 학생들에게는 소중한 자원이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매년 이웃의 따스한 사랑과 정성을 대할 때마다
학생들은 꼭 이겨내고 배워
더불어 세상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리라
열의를 불태우는 계기로 승화 됩니다.
우리 사는 사회에 이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손길이
더 많이 드리운 울타리 안에 모두가 따뜻해지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용우회와 회원님들의 사랑은
그늘이거나 양지이거나 편견 없이 스쳐 지나는 바람결처럼
우리에게 행복의 정이 넘쳐흘러 배어들게 하십니다.
상록야학은
이렇게 지역사회가 가슴 열고 손 내밀어
격려와 응원 속에 함께 해왔습니다.
지금은 사회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열악한 야학의 여건 때문인지
찾아드는 도움의 발길이 뜸합니다.
하지만, 마다않고 17년간 한길만을 밟으며 자취를 이어온
동대문구 환경미화원 용우회 님들의
이웃사랑정신은 영하의 바깥 날씨를 뜨겁게 달궈줍니다.
오늘도 더불어 사는 용우회와
김길주 님의 따뜻한 겨울이야기가
상록야학에서 정답게 속삭여 집니다.
늦깎이 배움터 상록야학에
아롱이다롱이는 몽개몽개 모여 알아갈수록
새로운 세상을 느끼는 기쁨으로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자 한 자 써나가며 배우고 있답니다.
그리고 못 배운 서러움은 한 줄 한 줄 지우며
푸른 하늘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립니다.
머지않아 동대문구 환경미화원 용우회의
따뜻한 겨울이야기가 새봄의 싹을 푸르게 틔울 겁니다.
글 : 박용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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