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수필
밥 먹고 가려면 지금 일어나
교사 정 종 현
“밥 먹고 가려면 지금 일어나!!!”
오늘도 어머님의 호통소리에
눈은 뜨지도 않고 주섬주섬 식탁에 앉아 밥을 먹습니다.
어제 있었던 회식에서 마신 술 때문인지,
덜 깬 잠 때문인지 아침밥은 참 맛이 없습니다.
10분도 안 되 후다닥 먹어 치워버리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는 회사에 갑니다.
오늘은 화요일…,
야학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수업준비가 덜 되어 있는 상태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고3반 수학담당이라
요즘 기출문제 풀이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가방에는 양인옥 선생님이 준
연도별 기출문제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좁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출력된 문제를 보는 건
불편하기 때문에 전 스마트폰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손이 기출문제가 들어있는 곳에 가기도 전에
온갖 뉴스들과 재미난 이야기에 눈이 팔려
그만 도착역까지 오고 맙니다.
후회가 들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 틈틈이 보면서 수업준비를 하자!’
라고 마음을 먹고 회사 문을 열고 일을 시작합니다.
어제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가 3시간 분량….
오늘 새롭게 할 일이 2시간 분량….
‘좋아! 오늘은 좀 여유롭겠는데….
수업준비를 마저 할 수 있겠군.’
여유롭게 녹차도 한잔 마시면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미팅을 한답니다.
미팅이 끝나면 또 다른 미팅이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미팅이 있을 수도 있답니다.
이러다 보면 오늘도 근무시간에는
회의를 하고 일은 밤에 하는 날이 되 버립니다.
시간은 금방 흘러가고 정신 차리면 3시,
아차 하면 5시, 역시나 시계는 7시를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도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8시30분에는 회사를 나와야 합니다.
8시 정도에 슬슬 눈치를 보다가
빈틈을 노려 잽싸게 도망치듯 회사를 나옵니다.
야근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시간을 끌 수는 없기에 질끈 감고 퇴근버튼을 누릅니다.
퇴근하는 전철도 사람이 많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수학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있는 척, 잘하는 척 수업을 하려면
미리 수업내용을 봐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지난 시간에도
준비 없이 수업을 했다가 문제풀이를 실수했었습니다.
학생 분들이 머라고 하시지는 않지만
그 순간 저는 제 자신에게 실망했었고,
수업을 들으러 고된 몸을 끌고 야학에 와서
감기는 눈을 필사적으로 뜨고 계신
학생 분들에게 말하지 못할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수업의 절반 정도는
미리 예습을 해두었기에
외대역에 도착하기 전에
수업내용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야학까지 걸어가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혼자 머릿속에서
수업을 해봅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을 하고….
학생 분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수업을 꼼꼼히 들으시고
깨알같이 적으시는 학생 분들을 보면
하루의 피곤함 따위는 금세 사라집니다.
피곤함이 사라진 저는
5교시에 오라는 선종훈 선생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냉큼 달려가서 또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갑니다.
내일 또 힘든 아침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마치지 못한 일 때문에 또 바쁜 하루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전 기꺼이 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해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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