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隨筆)검정고시 상록야학
땅콩과 아름다운 손맛
중36 손 정 애
2교시 수업 직전
비닐 소리를 바스락바스락 내면서
뭔가 한 봉투씩 만들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계속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무얼 저렇게 열심히 나누어 담고 있나 했더니,
그 시간 수업이 끝나자 한 봉투씩을 돌렸다.
‘뭔가?’ 하고 열어보는 순간
흙냄새가 나는 땅콩이 들어 있었다.
흙도 그대로 묻어 있는 땅콩을,
힘들게 캐온 땅콩을
일일이 봉투를 만들어서 나누어주는 그 마음!
그 땅콩은 학급에서 몇몇 분이
국어선생님과 함께
서산 땅콩밭에 다녀왔던 것이다.
난 그 중에 하나를 꺼내
손으로 흙을 대강 문지르고 입으로 가져가
깨고 알을 꺼내어 씹었다.
어쩜 그렇게 비리지도 않고
고소하고 신선한 그 맛!
흙이 묻어있는 그 땅콩을
씹어 먹는 순간 어릴 적
그리운 시절이 떠올랐다.
외갓집은 경남 합천이었다.
엄마는 친정에 다녀올 때면
감, 밤, 고추 등 여러 가지를 얻어 오시었다.
그 중에서도 땅콩농사를 많이 짓는 외가에서
마대 가득 땅콩을 가져오셨다.
모래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땅콩을
우리 형제들은 잘도 먹었다.
이렇게 외갓집 덕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땅콩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남 주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이웃에도 일일이 그릇에 담아
나누어 주셨다.
빌려준 것은 찾아오라면
서로 눈짓으로 미루고 안 가면서
갖다 주라는 심부름은 서로 하려고 했다.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흙 묻은 그 땅콩이
외가에서 가져 온 땅콩처럼 정겹게 느꼈다.
그것을 나누는 영순 씨, 복순 씨, 영수 씨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엄마가 이웃에 나눠 주던 땅콩을
이웃사람들은
얼마나 귀한 땅콩이냐고 고마워 하셨는데!
내가 먹고 있는 이 땅콩이
너무나 고맙고 귀한 느낌이다.
땅콩에 묻어있는 흙을 보는 순간
옛날 엄마 생각, 외갓집 땅콩을 가져왔던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나눠주는 그 분들이 그 마음 쓰는 게
고맙고 감사해서 가슴이 찡 해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전철 안에서도
그 흙냄새 나는 땅콩을 계속 코로 맡으면서
까먹었다.
창피한 것도 잊고 전철 안에서 계속 씹고 있었다.
땅콩밭에 못간 학우들을 위해
땅콩을 나눈 친구들!
또 시골 서산에서
땅콩을 캐어가게 허락하신 순수하신 분들,
모두가 땅콩 속에 자신의 하얀 살을 내며
맛있게 드시라고 허락한 땅콩!
구워 먹고, 삶아 먹고,
반찬조림으로라도 맛있게 해먹으라고
정답게 나란히 두 개의 땅콩이 속삭이는 것 같다.
이런 모두가 나눔의 실천이리라.
우리 학급 학우들 모두가
봉투를 받는 순간
미소로 고마워했을 것이다.
나와 모두를 기쁘게 해주신 분들께
행복 넘치는 복을 받으시라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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