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버지 삼베수건(상록문예 108)
이름: 고릴라
등록일: 2013-07-16 13:23
조회수: 2617 / 추천수: 690
아버지 삼베수건
지난 봄 그리워
봉화산 말라붙은 들국화 밑둥치만 살피던 겨울
그 산길로 봄이 들고 연록이 피어난다.
지금 고향 마늘밭에 눈 녹고
봄비 나리고 아지랑이 피어나리니
아버지 계신 양지에
푸른 잔디 무성하게 하늘 향하겠다.
사흘 와 계시라고 해두었는데
세 시간도 안 되어 두고 온 짐승먹이 걱정 된다
고향집에 전화를 넣으시던 아버지
세월의 부피만큼 묵은 댓돌 이끼 내리도록
백 리 집밖을 떠나지 못하시던 아버지
나 사느라 바쁘다 마음뿐
아버지 사랑해요 한마디 말도 못 드리고
아버지에겐 갯바위 굴버걱 같았던 나
들녘 푸른 4월 드넓게 드리우고
천수만 피라미 떼 지어 헤엄치던 곳.
흙이 좋아 평생을 흙과 벗하던 아버지
그 어둔 속에서도 새 봄을 맞이 하셨겠다.
하늘에 높이 걸린 종다리 지질대면
살 고은 햇살에 몸을 맡겨 두시고
아버지 깊은 잠에 흠뻑 젖어 지내시리.
올 긴 봄 날 농사일 없는 땅 오랜 잠 꿈속에서나
물든 논에 소 쟁기 부리고
저 산 그늘에서 뻐꾸기 울음 건너 오며는
이마에 흐른 땀 가져가신 삼베수건 내어 씻으시리.
하루 해 저물거든 그제는
평생 손에서 놓지 못한 삽자루 내리시고
편히 누워 유한(有限) 세상 무한(無限)히 누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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