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푸른 파도
박 용 준
이슬비 촉촉이 뿌려
메마른 마음에 앉은 딱지를 축여준다.
모처럼 두물머리 세미원(洗美園)에
나앉아 원고지를 앞에 두니
총총 대던 마음이
아프리카의 초원처럼 여유로 펼쳐진다.
벗님들 오가는 정담(情談)이
봄바람에 일렁여대는 밀밭처럼 푸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비올 날 개미들 집 단속하듯 바쁘게 달려왔고,
가쁜 숨 벅차게 호흡하며 살았다.
그러나 오늘 열 일 놔두고 펼치는 문학토론이
삶의 양분을 배양(培養)하는 자리이겠다.
치이는 생존의 전장(戰場)에서 얻는
얼마의 양식을 위해 수족(手足)을 놀려 사방을 헤매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 두물머리 천하를 얻어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불어 나가는 바람에
이끼 낀 마음을 헤쳐 말린다.
간에 차 있는 얼마의 독기와
창자에 남아있을 얼마의 버릴 것들은 시원히 배출하고
푸른 것과 맑은 것으로 채우고
주변 새소리 바람소리가 청아하게 일렁임을 바라본다.
마침내 두물머리 파도 되어
저만치 강어귀로 달리며
내 삶을 용트림하는 행복에 겨워본다.
얼마 전 병원으로부터 전달받았던
도깨비 같은 의사의 소견도 이 맑은 햇살에는
도리질 하며 사라질 판이다.
어깨에 얹혔던 고민실린 번민도
까짓것 아무렇지 않게 생각된다.
한 살이라도 젊었던 때의 호기(浩氣)와는 다르게
지명(知命)이란 삶의 눈금에 닫고 보니
아주 소소한 것에서도 호랑이도 놀라 내빼게 위협하던
어린아이의 곶감처럼 조그맣게 부석거리는
주변의 충고에 말미잘 촉수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게 된다.
아는 게 병이라지만,
내 안의 잔병이나 힘껏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고통이라면
꾀부리지 않고 잘 달래고 견디어 원만히 이겨간다면 그도 나의 벗이리라.
너무 조바심 내지 말 것이며
좀 모자라거나 없어도 없는 대로 참고 순응하는 게 내 삶의 모습이다.
운명을 믿기에
내가 늙어 불행을 얻어 지낸대도
그로써 내 복이요,
많은 복 얻어 지낸대도
내 복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미쳐 살 것이다.
다행이도 지금은 문학을 논하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들려주는 이들이 있어 복 중에 큰 복으로 알고 살아간다.
단지 스스로에게 지워진 복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에 맞는
처신을 하는 것 또한 필수라 하겠다.
앉으면 일어날 줄 모르는 내 술버릇이나
사근사근하지 못한 말버릇이나
상대를 포용해주지 못하는 성미들을 버릴 것이다.
오늘 두물머리 강물과 새와 나무와 하늘에 의지해 던져버리고 싶다.
이 넓은 대자연 순한 바람처럼 수용하고
순응하며 어우르고 다듬으며 살고자 한다.
까칠하고 옹이 진 삶,
이기심(利己心)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것을 반성한다.
더불어 고루(固陋)하고 투박하고 거친 생각의 화폭에
흰 바탕의 도화지를 준비하고 푸르고 따뜻한 색으로
포용(包容)하는 마음까지 골고루 채색(彩色)해 넣겠다.
그리하여 나와 너와 세상의
모두가 하나로 맞물리면서
목마(木馬)의 다채로움처럼 높고 낮게,
빠르고 느리게, 분위기 맞추어 살아야겠다.
오늘 추억에 남을 좋은 벗들과
자연에서 내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고
내일부터 시작의 삶터에 더부는 마음 펼치고
더 열심히 삶을 경작(耕作)하고자 한다.
저 넓은 두물머리 출렁이는 물결처럼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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