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 아픔 딛고
김 미 순
이사한 곳을 찾아오는 이들마다
아늑하니 공부하기 좋아 보인다고 칭찬이지만
홀로 떨어져 유배지 같은 서운함도 조금은 젖어드는
우리 고등학교 3학년반을 소개합니다.
중학교부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미모의 정다울 선생님,
국방연구원에 근무하는 훌륭한 석학
이상철 선생님,
제자사랑이 만면에 웃음의 물결로 잔잔히 배어나는
조재현 선생님 등
16명의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반장 오세문 씨를 중심으로
4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우리 반에는
대개 6.25전쟁 후의 세대에 태어난 학우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암울했던 시대를 이겨 나온 우리들은
지금도 생업의 전선에서 두 발로 뛰고 있으며,
밤에는 야학에 나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활동 찬 반우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재건하자.” 구호아래 자라온 세대인지라
세상에 타협화고 순종하기 보다는 억척스럽게 살아나온 학우들입니다.
자연스럽게 악착스러움이 남다른 것 같고,
그래서 스스로가 부지런하고 잘합니다.
한가로이 차 한 잔하고 글 한 편 쓸 여유가 없이
공부하기에만 바쁜 우리 반원들입니다.
내년 4월이면 지난 2년 간 노력한 결과를 확인하는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꼭 합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한 날 한 시에 합격하길 기도하며
지도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보답하려 합니다.
우리 반에는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장정자 님이 글을 잘 써서
한방에 상록야학을 전국에 알리고 선생님들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상록가족과 더불어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가족들에게 안쓰러움과 미안함과 아쉬움도 남습니다.
어느 날 김길례 씨 댁에 들렀다가 길례 씨 영감님과 저녁을 함께 먹는데
그 댁 영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인제 애들 다 키워 딴 살림 내주고,
저 사람과 딱 둘이서 삽니다.
그런데 공부하러 간다고 저녁에 나가고 나면 같이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
참 나, 뭐 하러 공부는 한다고 저러는지.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찌 이 집 얘기뿐이랴! 대부분의 가정이야기지 싶어
그 하시던 말씀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런데도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나오는
많은 반우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닮아야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드러나는 우리들의 이 얼굴,
이 정신이 그 무서운 전쟁을 겪은 후를
살아내는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시 소녀로 돌아와 전후세대 아픔 딛고 고3이 되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눈 뜨고 일어나면 만나는 이마다 “재건합시다.”를
외치며 살아온 우리여서 더욱 살뜰하게 사랑이 붙고
살가워지는 우리 반이 아닌가싶습니다.
인제 중년 말에 이 좋은 상록야학에서
세상을 경영하는 지식과 삶의 양분까지 얻었으니
남은 인생 바쁘게만 살지 말고 세상구경도 하며
세상에, 가정에 촛불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봅시다.
우리 고 25회 모두 합격하시고 영광스런 졸업 꼭 이룹시다.
아등바등 그만 하고 우리 반 모두모두 건강하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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