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는 이름의 윤활유
정 문 화
나뭇잎이 유난히 파랗게 반들반들 빛을 뿌립니다.
50대에 찾은 어린이대공원은
나를 저 너머 20대 청춘으로 잡이 이끕니다.
그렇죠.
나에게도 분명 새파랗게
젊음이 뿜어나오던 청춘이 있었으니까요.
그 뿐인가요?
벌이 가는 곳엔 꽃이 피고
꿀샘이 야롯한 향을 뿌리며 지천에서 유혹했으니까요.
약 30여 년 전에 뚝섬에서
서울역까지 운행하는 65번 버스가 있었습니다.
나는 시청 앞에 동방빌딩,
지금의 삼성본관 정문 주변으로 출퇴근하고 있었습니다.
그 빌딩에서 칸막이를 시공하는
동성전기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본사는 뚝섬에 있었지만
칸막이공사를 동방빌딩에서 하는 중이라
출퇴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출퇴근 때마다
마주치는 65번 버스안내양하고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어점 내가 더 그 안내양을 가까이서 보려고 한지도 모릅니다.
평소보다 머리를 좀 더 정갈하게 빗거나,
옷에 신경을 쓰고 그녀에게 쉽게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사랑을 고백한 편지를 늘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그 안내양의 손을 잡고 오늘 이 대공원에서
하루 데이트를 한 기억이 납니다.
푸르른 대공원이 흔들리는지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도록 걷고 또 걸었던 그날의 대공원 길입니다.
세월이 흐른 후 이렇게 알게 된 버스 안내양이,
한잔 하고 그윽이 취할 때면 추억으로 떠올라서
내 삶의 윤활유로 늘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과 잘 지내겠지!
아니면 아직도 그때의 그 소녀로 남아서
나처럼 당신도 나를 못잊어 하겠지요.
여하튼 늘 행복하게 잘 지내길 기원해 봅니다.
그 날 이후로 오늘이 처음 방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사람 나의 앞길을 막고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화교환원아가씨였습니다.
강00이라는 정말 예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내가 총각의 마지막 즈음일 테니까
역시 약 30년 전이 아닐까 합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던(아니, 정확히 말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세월이 흘러서
그때 정황이 잘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 아가씨는 키가 1미터 75였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됩니다.
버스를 타면 자기보다 더 큰 여자는 보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여자를 생각하곤 합니다.
내 키에 그 여자와 나란히 걷는 꿈을 가끔은 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녀와 어린이 대공원으로 자주 데리고 와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산 아니면, 이곳 어린이대공원밖에
마땅히 여인들과 데이트하기에 적합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 대공원에 오니 갑자기 그 여자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내가 마신 약간의 술기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즐겨입었습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훤칠한 그녀,
걷다 보면 다들 우리를 쳐다보는 눈길이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나는 키가 작고, 그녀는 정말 키가 커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나와 만날 때 신발굽이 없는 신을
꼭 신고 나온다 했습니다.
그리고, 키를 나에게 조금만 줄 수 있다면
정말 주고 싶다던 그녀!
삶에 찌들어 뻑뻑하고 답답한 가슴에
그녀는 시원하고 매끄러운 추억의 윤활유가 되어
나를 젊어지게 합니다.
오늘같은 날이면 정말 미치도록 생각이 납니다.
긴 머리를 가진 그녀, 날씬한 그녀, 참 생각이 납니다.
3년여 연애를 해서일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그녀, 아니 강00이야!
“부디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운의 여신이 어쩌다라도
우리를 돌아보고 한 번 쯤은 재회의 기횔르 준다면
얼마나 황홀하도록 기뻐질까?
추억에 빠져본다.
그리고 이게 바람이라면 늦바람이라 해도 좋으니
그 기분 오래오래 이었으면 어지나 좋을까나, 말까나!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와서 취해보는 나만의 상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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