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파이팅!
안 정 희
2012년 9월 어느 날.
그날은 내게 있어 생에 특별한 날로 기억되었다.
몇 년 전 우연히 퇴근길에
대신야학이라는 전봇대 광고를 보게 되었다.
전에는 야학에는 40대쯤 되는
주부들이 다니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참 부러웠다.
식당에서 일을 할 때라 밤 10시 퇴근이니
시간이 없고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나로선
중학교도 못 들어가는 형편이었다.
야학도 아무나 다니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 배움이란 여전히 사치였고,
그들을 바라보며 부럽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며 서글퍼 하던 그날의 아픈 기억!
광고지를 뜯어 들고 대신 야학을 물어물어 신촌까지 찾아가니
우리 집 주소가 이문동이라고 하니,
외대 앞에 상록학교가 있다는 걸 인터넷으로 검색해 알아봐 주었다.
내친김에 상록에 와서 면접을 하고 나니 저녁 7시쯤 되었다.
바로 수업이 있으나 한글만 읽을 줄 아는
초등학교 2학년 중퇴라는 내 말에 입학이 좀 어려울 것이라 한다.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여 상담하면 등록이 되는 것이니 기다리란다.
사진 5매, 등본 1통, 책값을 준비했다.
상록을 만난 지 이틀 만에 나도 학교를 가게 되었다.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같았다.
‘그래, 교실에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듯
없는 듯 쫓겨나지나 말자.’고 결심을 했다.
나는 감정고시를 안 보니까 진도를 못 따라가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토록 듣고 싶고, 부르고 싶었던 나와는 다른 세계의 용어!
시험, 소풍, 졸업, 동창 그런 말을 하며
그 분위기속에서 이들과 섞여있고 싶었다.
그렇다. 내 삶에서 잃어버렸던
13세 소녀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43년을 거슬러 나는 이곳에 온 것이다.
책을 받아 책냄새를 맡아보았다.
촉감도 너무 좋다.
잃어버리지 않게 뒷장에 상록중1 안정희라고 꼼꼼히 적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던 그 옛 책과는 사뭇 다르지만,
첫 수업은 담임 국어시간이었다.
사각사각 분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칠판엔 이렇게 써 놓으셨다.
“‘따옴표. 마침표, 마침표는 종지부라고도 하며~”
이해하는 눈으로 하나씩,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후 백일장이 경복궁에서 열려 갔었는데,
처음 가 본 경복궁은 신기하고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이런 교육의 장을 모르고 살아온 내가 안타까웠다.
엠티도 갔다.
송년의 밤을 지나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식 날 찍은 사진, 엠티에 가서 돌림종이 적은 격려의 글,
일일이 남겨주시던 박용준 담임선생님,
권오길 사회선생님, 황기연 한문선생님
사진과 학생증, 성적표까지 모두 모아 두었다.
신랑은 두 아들에 이어 마누라 뒷바라지까지
한다며 만날 뭐 배우고 왔냐고 물어본다.
큰아들은 과학, 생물은 저한테 고액과외 받으라 하고,
작은아들은 우리 엄마 전문대 국문과 나와서 자서전을 쓰라고 격려해준다.
며느리들도 날씨 추워지니 옷 따습게 입고
공부하시라며 어머님 파이팅! 하며 응원해준다.
고마우신 선생님 한 분 한 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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