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隨筆) - 졸업생
갖가지 인생, 그리고 나
고 26회 정 순 희
정말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각 사람들 생김새처럼 다양하고 신비롭다.
어떻게 알고서 이렇게 찾아 일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내 일을 위해서 새벽에 눈 뜨면 부지런히 준비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텅 빈 남의 빌딩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어떤 이는 더 먼저 나와
작은 수레에 상자 하나 담아 끌고
나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날마다 달려간다.
어느 날 물어 보았지. 어디를 가냐구?
이태원 고시촌에 깡통 주으러 간다구.
또 어떤 이는 작은 카터기를 끌고 새벽마다 나와 마주쳤다.
뭐 하러 다니느냐구 물어 보았지.
동대문 광장시장에 양말 따러 간다구.
또 다른 이를 새벽 버스에서 만났지.
이 새벽에 잠 안 자구 어디 가냐구?
신당동 떡볶이타운에 떡 떼러 간다구.
떡볶이 떡이 나올 때 붙어서 나오는데 낱개로,
낱개로 떼어 놓는 그런 일을 한다구.
또 다른 이를 만날 때 물어 보았지.
새벽마다 예쁘게 화장 하고 어디 가냐구.
노후 대책 하려구 돈 벌러 간다구. 병원 가서 청소하구 월급 두둑이 받는다구.
또 다른 이를 만날 때 물어 보았지.
아줌마도 청소하러 가냐구.
아니라구.
나는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옷장사 한다구.
이젠 흥미가 생겨서 옆에 앉는 이마다 물어 보았지.
가방에 한 짐 지고 이 손 저 손 들고 가는 이는 뭐 하러 가냐고?
종각에서 김밥 파는 포장마차 한다구.
또 어떤 아저씨가 큰 가방을 안고 앉아 있기에
아저씨도 경비하러 가시냐구?
아니라구.
인천 신도시현장에 공사하러 간다구.
두 시간을 가구 두 시간을 오구.
무거운 가방을 두고 다니지 왜 지고 다니냐구 또 물어보았지.
직원들이 너무 많아 누가 가져갈까봐 지고 다닌다고.
또 어떤 아저씨.
바짝 마르고 조그만 아저씨는 어디 가시냐고 물어봤는데
문서 전달하는 택배업을 한다구.
이십 몇 년이 된다고 했다.
그 새벽일을 이십 몇 년?
또 옆에 아저씨는 나랑 같이 항상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그렇게 뛰듯이 빨리 걸어서 어디를 가시냐구?
치과병원에 이빨 만들어 놓은 것 갖다 주러 간다구.
서초동도 가고, 방배동도 가고, 몇 군데를 가야 하니 빨리 다녀야 한다고.
갖다 주고 받아와서 또 만들어서 갖다 주고 몇 십 년이 되었다구.
지하철이 가득 차는 많은 사람들.
새벽 다섯 시 육 분 차, 한둘 젊은이를 빼고는
모두 늙은이들.
남자들은 주로 경비,
여자들은 청소용역,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새벽을 가르고 다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나도 여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으니
감사할 일 아니겠는가?
칼바람이 볼을 스칠 땐 베일 것 같아도 나는 이것이 행복하다.
교통사고로 발을 잃었을 때는
앞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삼 층 병실에서 창밖 아래 도로를 보고 있을 때 무심코 걸어가던 이들을 기억한다.
그때 그들은 발이 있어 자신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지.
나는 늘 그때를 잊지 않고 생각하며 산다.
걸을 수 없어 누어만 있고,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니
살아서 뭐 하나 하고 슬퍼했던 그 날들, 출근이 행복하고, 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
새벽알람이 울릴 때는
한 번에 발딱 일어나 가방에 간식 챙겨 담아 지고
골목길을 지나 큰 길로 나온다.
비단안개가 자옥한 새벽.
상쾌한 공기를 들어 마시며 부지런히 걸어가 지하철 탄다.
세상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내 일처럼 정성껏 다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하고 마치면 집에 와서 편히 쉴 수 있으니
이런 하늘이 주신 행복을 그대들은 아는가?
꼭 굶어죽지 않으려고 일 하지 않고
내게 주어짐이 너무 감사해서 일한다.
또 인연이 되어 찾아주시는 선생님이 있고, 동생들, 후배들이 있어 감사하다.
“여기 이런 인생이 있습니다”
외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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