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손 향 수
내 고향은 아담하고 포근하며,
따뜻한 햇살이 온종일 비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봄이면 집집마다 연분홍 살구꽃이 만발하여 온 동네가 꽃동네였고,
여름이면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와 함께 풍년노래가 들려와
귀를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어린 나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워 부르는 노랫가락인 줄 알았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 소리는 힘든 것을 조금이라도 잊으려는 노동노래였습니다.
지금 환갑이 넘는 나이에 참 오랜만에
고향 갯둑에 앉아서 지난날을 생각하니
참으로 즐겁고 아름답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가슴을 스쳐갑니다.
여름 장마에 비가 오다 그치면 큰 물고기들이 개천에 올라왔다고
고기 잡으러 달려가던 오빠들 생각,
무너진 논두렁을 다시 쌓으려 삽과 말뚝을 만들어 지게에 얹어 지고
논으로 나가시던 우리 아버지,
오빠가 잡아온 생선으로 애호박 송송 채쳐
고추장 풀고 끓여주시던 생선칼국수는 천하에 일미였습니다.
큰집식구, 작은집식구 모두 모여 방으로 가득,
마루에 가득 앉아 맛있다고 즐거워하던 생선칼국수가 눈에 선합니다.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으니 또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햇볕이 따갑던 초등학교 시절 여름 오후면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친구들 칠팔 명이 갯둑에 모여 옷을 홀랑 벗어 책보 위에 얹어두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 하던 기억이 그립습니다.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이 보고 짓궂게 놀리면,
물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소리만 질러대던 즐겁던 시절,
그 여름날이 그리워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추억에서 제발 깨어나지 말았으면 싶다고 생각하니 절로 쓴웃음이 나옵니다.
손으로 갈대순을 쓰다듬어 훑으니 솜털씨앗으로 한줌 가득 됩니다.
그리도 아름다운 고향이었는데 내 나이 환갑이 지나고,
부모형제 하나 없는 고향은 참으로 쓸쓸하고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 돕니다.
그때 물놀이 하던 개천은 지금 누렇게 오염되어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들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친구들 몇몇이 고향에 남아있어 지금도 만나면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우리 고향에도 00마트가 생겼어.”
라고 자랑을 합니다. 사실 그 친구들이야
편리하게 싼 값으로 생필품을 구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옛날에 풍성했던 인심은 사라지고 장사치의 상술만 마을에 얼룩질 것이란 생각에 아쉽습니다.
나는 아직도 어릴 적 얼룩빼기 황화 암소,
송아지 모두 모여 음메음메 시끄럽고, 싸전에는 산골동네에서
쌀과 잡곡을 머리에 이고 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장사꾼과 싸우는 소리 등
모두가 정겹고 인심 좋은 고향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이제 장골목도 다 없어지고,
고향 사람들은 00마트에서 오만가지 다 구입하고 편리하게 사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긴 세월만큼 고향도 많이 발전하고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의 고향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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