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상록 교사의 한풀이 -
홍 대 선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올 때에도
XXX는 OOO를 진실로 아껴주고 사랑하겠는가?,
~ 둘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늘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갈 텐가?,
~ 신랑 XXX군은 신부 OOO양을 맞아…….”
오늘날 여느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는
주례 선생님의 상투적인 질문이다.
언제나 똑같은 레파토리를 듣기에 결혼식장에
매주 출근하다시피 하는 결혼 적령기의 선생님들이나
참여하는 상록가족들은 지겨워할 판이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거니 하고 실명은 거론치 않겠다.
그리고 아직 결혼의 문에 골인하지도 못했는데
여러 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주례를 봐야하는 선생님역시도 지겨울만하다.
아~, 누구를 지칭하는지 너무나 분명하다.
모르면 상록의 간첩이리라.
그러나 선생님의 주례사는 정작 당사자인
신랑, 신부의 귀에는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맑고 고운소리로 달콤하게 들릴 것이다.
두 사람의 오랜 동안의 교제가 마침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며,
둘의 사랑이 마침내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차 5~10년 후에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는
22~27세의 N세대의 사랑법을 본다면 그들에게 위의 주례사가 통용될까 걱정되기는 한다.
사실 필자도 위 세대이기는 하다.
이들은 사랑을 하기도 전에 따지는 것이 너무 많다.
3개월 전의 일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같은 과 2년 후배인 S양이 아침부터 화장이 잘 안 먹었다느니,
옷이 맘에 들지 않다느니, 야단법석이다.
보통 때도 외모에 신경 쓰며 치장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던 녀석이었는데,
그 날은 여느 때보다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유인즉슨, 이번에 사법고시 붙은 사람과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쪽 아버지가 재경부 주요 인사이며,
집도 로또 캐슬이기에 이번에 꽉 잡아두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녀석의 장황한 설명이었다.
사실 영원하고, 순수하고, 투명한 사랑을 꿈꾸던 나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아직 대학생이면서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캐내어 오는 것일까?
그리고 나이 스물넷에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고 교제하면 과연 둘이 행복해질 수는 있을까?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의 후배 녀석은 약간 특이한 케이스임을 여러분들께 일러두고 싶다.
하지만 그 나이에서 3~6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런 케이스가 수두룩하지 않을까?
가문의 배경, 경제적인 수입의 정도, 부동산 보유 정도, 사는 곳, 학벌 등등
결혼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하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이러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막상 결혼할라치면,
경제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리스크 부담의 증가와 손익분기점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역선택과 모럴해저드가 나타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건 견적이 나오지 않아 막상 결혼하기가 겁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콩닥콩닥 두요’와 같이
서로의 정보를 완전히 공유하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자신의 성향, 등급에 따라 파트너를 짝지어주는
결혼정보회사가 성행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리라.
물론 등급이 백만 배 중요하다.
그러나 도대체가 신비감이 없다.
특히 요즘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경제적인 등급에 따라 파트너를 정해주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경제적인 조건을 초월하면 그 위에는 가문의 벽이 기다린다.
그래서 연봉 6000은 연봉 4000과, 연봉 5000은 연봉 3500과
연봉 3000은 아예 등급에서 제외되는 ‘돈으로 사랑을 사는’ 세상이 온 것이다.
21세기형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아닌가.
부잣집 따님이 지지리도 가난하지만 패기 있고
총명한 고시생과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제하지만,
중도에 부잣집 따님 쪽의 집안이 거덜 나고
그와 비슷하게 고시생은 고시에 합격하여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이 나오는가 싶더니
지지리도 가난한 고시생이 더 나은 출셋길을 찾아
배신하여 과거의 부잣집 따님은 눈물의 복수극을 펼친다는,
어릴 적에 즐겨보던 드라마는
이제 이희라 씨의 ‘시라소니’ 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만남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만큼은 상록의 선남선녀 솔로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 짝을 찾아 조건 없는 정열적인 사랑을 하게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주례보시는 늙은 총각(?) 선생님’
역시 천생연분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상록 선생님들이 이 분의 지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_-;
2006년 1월의 어느 밤 지샌 새벽,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외로운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그믐달에게 빌어본다.
“아~, 나의 반쪽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있을까?” ♤
| |
분께서 방문해주셨습니다~ 이곳에
있는 자료의 모든 권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