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소식
유 제 영
고향!
생각만 해도 말만 들어도 정겨운 마음에 가슴이 설렌다.
사실 고향에서 그리 풍족하게는 살지도 못했었는데,
왜 그리도 지금은 고향이 그리 좋은 것인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은 고향이다.
귀에 익숙한 말과 표정들이 본 적이 없는 분들인데도
어디서 본 듯하고, 이웃집 어른들을 만난 듯하다.
“아 이리 와서 앉어유. 오디가지 간데유?”
“예, 당진유!”
어느새 나도 저절로 고향의 말투로 바뀐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답답할 만큼 느리고 늘어진 억양들이
나는 그냥 이유 없이 구수한 숭늉 맛 같이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하다 명절 때 내려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그저 바쁘다.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소식이 궁금하다.
“아무개네 순자는 왔는디, 옆집 금자는 안 왔댜,”
“아 근옥이는 서울서 좋은 회사 다닌다더니 역시 선물 보따리가 많기도 하대!”
농촌에는 자녀들이 다 객지에 나가 있다가
특별한 명절 때가 되면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거나 자식들이 내려오길 기다린다.
바쁘고 힘든 일에 매여 살다가 만나는 기쁨이 커서 흐믓한 것이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자식들에게
뭐 별난 것이라도 먹여보고 싶은데 하는 부모의 마음이 간절하다.
여유롭지 못한 생할 속에서도 당신들 잡숫고 싶어도 안 잡수시고
아껴두었다가 자녀들이 오고, 또 자녀 친구들이 찾아오면
손님 대접하시라 마냥 바쁘기만 하시다.
반듯한 옷 한번 못 입으시고
그저 수수한 차람에 하얀 이를 들어 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검은머리가 희긋희긋 되고
반듯하던 허리 곡선을 이룬다.
팽팽한 얼굴은 저수지에 물결 무늬를 이룬다.
집집마다 단발머리처럼 가지런히 이엉을 해 일어 단장된 초가지붕 위에
밥 짓는 연기가 마치 꼬리연처럼 나폴 거린다.
딱딱한 도시의 아스팔트를 걷던 기분과는 달리
황토흙을 밟으니 푹신한 스펀지 같은 느낌에 정겹다.
골목길마다 소 돼지의 우리에서 풍겨 나오는 오물 냄새도 싫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다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느 집은 자녀들이 오지 않아서
외로워 시무룩하게 기가 꺾여 있거나
또 건강이 좋지 않아 전에 뵙던 분이 올해는 보이지 않는 아픔도 있다.
그때 내 또래들이 지금은 결혼해서
이 세, 삼 세들을 데리고 모여든다.
나의 어린시절 그 정겨움은 사라지고
서로 먹고살기에 바쁘고, 다음세대를 책임지느라 삶이 고달프다.
단발머리 초가지붕도 꼬리연 같은 굴뚝의 연기도 보이지 않는다.
푹신한 황토길도 짐승들의 오물냄새도 다 사라지고
특별한 별식보다 어른들 보약보따리가 집안에 보이고
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가용이 농촌 마당에도 한 집에 한 대씩이다.
고향이 이제는 농촌이라기보다 작은 도시로 변해간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은 어떠한 추억을 간직할지
나의 추억은 정말 옛날 옛적에 이야기로만 남아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그리 행복하지 안은 게 살았건만
지금은 행복했었구나 하면서 고향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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