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의 박학선 교장선생님께
교장선생님께 전하고 싶어요!
교장선생님과 처음 만나 뵌 입학식은 존경과 감사로 마음이 산처럼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여심은 아닐지라도 교장선생님을 뵈울 수 있는
돌아오는 상록의 밤을 기다리느라 많은 설렘을 갖는답니다.
교장선생님의 그 고매한 뜻에 질세라 좀더 잘하고 싶지만,
배운 바 떠오르지는 않고, 편지라도 드리고 싶지만, 잘 실천되지 않는 답니다.
어쩌면 중년의 푸념이라고 교장선생님께서는 피식 웃어버리시겠죠?
여리고 여린 새싹 같은 연민의 정은 아니라도
우직한 가르침으로 높은 봉사의 뜻 투철한 친정오빠 같은 교장선생님 가시는 길이 나는 좋아!
오랜 세월 흘러온 푸른 강에 돛을 높이 세우고 노를 저어 온 교장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연정으로 잠 못 이루던 그 시절은 세월의 구름 속에 다 띄워 보냈습니다.
아니, 그 구름 속에 묻혀버렸다 해도
뒤늦은 배움 열정의 바람으로 차분하게 앞만 보시고 노 젓는
교장선생님의 자상함과 든든한 가르침 속에 그만 어렸던 그 시절로 돌아 가봅니다.
교장선생님!
자기의 몸을 불살라 태우는 촛불과 같이 상록터전을 잡아,
눈이 어두운 학우들에게 앎을 밝혀주시고
잡힐 듯 잡힐 듯한 그 머릿속에 조각처럼 흩어져버린
여러 갈래를 하나로 세워 북돋아주시려고 애쓰시는 교장선생님, 다시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너무 긴 세월을 무디게 살아왔고,
힘든 세파의 굴레에서 벗어나보지도 못한 그런 마음,
교장선생님의 숭고한 품에서 새 삶과 이상을 찾아 살고 싶다면 욕심은 아니겠지요?
한 글 한 글
예쁜 주옥같은 글귀는 아닐지라도
이 편지를 올리는 제 마음은 지금 행복합니다.
그런 꿈과 희망을 지니고 성취해갈 수 있다는 게,
허공도 아니고 메아리도 아님을 교장선생님께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단 말이지요!
너무 쑥스러워 이름은 안 밝힙니다.
교장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상록의 어느 중년 여학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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