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애환사(哀歡詞) 2
김 복 례
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80은 돼 보이시는 노인이 한 분 찾아오셨다.
하룻밤 묵고 가시는 줄 알았는데 아예 우리 집에 눌러 사셨다.
호랑이 할아버지였다.
동생과 나에게 호통 치시며 주인행세를 하셨다.
그런 분을 시아버지 모시듯 어머니는 흰 한복을 깨끗이 빨아드리고
식사도 꼭 아버지와 함께 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엔 이해가 안 되었다.
몇 년 전 그때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엄마, 옛날에 할아버지 한 분 우리 집에 계셨죠? 그 분이 누구세요?”
“자식도 없고 친척도 아무도 없어서 몸 붙일 곳 없는 불쌍한 분이라
그냥 우리 집에 계시라고 했어! 한 삼 년 쯤 계시다가 ‘죽을 때가 된 것 같아’
하시면서 고향으로 간다고 훌쩍 떠나셨지.”
하시며 잠시 고향생각으로 앞산을 바라보셨다.
이렇게 부모님들은 호인이었고,
나는 못살아도 내 집 오는 사람들은
그냥 보내면 안 되고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들이었다.
70세 된 오빠!
장남이라서 그런지 자상하고 인자하신 분.
군대생활하시는 때 병장월급이 54원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모아 제대하면서 누런 종이에 싸서 양말 속에 넣어오셨다.
그리고 언니 시집갈 때 혼수에 보태라고 내놓으셨다.
그때 금액이 천원인가 만원인가는 자세히 모르겠다.
언니는 그 돈으로 양단치마저고리 한 벌 옷감을 샀다.
언니!
초등학교 3학년 때 6.25사변이 나서 피난 다니고 하다보니
공부는커녕 죽도 못 먹을 형편이었다.
공부 못한 원망은 가끔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언니를 천사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억척같은 언니는 능력도 남다르다.
운전면허 시험도 한번에 붙었다고 하는 언니다.
그리고는,
“너는 여태 뭐하고 있냐?
뻥 뚫린 도로를 한바퀴 휭 돌고 오면
스트레스 확 풀리고 어떤 때는 남편보다 더 좋더라.”
하면서 나더러 얼른 면허를 따란다.
그런데 나는 운전은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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