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동문 EBS수기당선작
함께 한 37년 전인교육의 전당 3
그렇게 선배를 보내고 후배를 맞이하고
또 1년이 지나서 이제 저희가 선배가 되고
고입 검정고시 시험도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이제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 동기생들과 바쁘게
졸업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도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교무실에 다 부셔진 캐비닛 사물함을 바꾸어 주고 싶어
부반장인 저는 반장 오빠와 함께
중고 가구를 파는 거리를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지금은 조금 가물거리지만
어쨌든 학교에 선물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사러
반장 오빠와 돌아다니던 여름밤 이였습니다.
저는 그때 반장 오빠를 짝사랑하고 있었기에
오빠와 어두운 여름밤 거리를 둘이 걷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였습니다.
늦은 밤 친구들은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저는 오빠와 데이트를 하는 기분 이였지요.
한참을 물건을 고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어두운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는 무서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를 피할 만한 곳도 없어서 주룩 주룩 비를 맞으며
비에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그 비를 맞는 것 또한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의 저의 야간 학교 시절은 힘들었지만
행복하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 후 고입검정고시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아이들에게 엄마의 야간학교 시절을 이야기 해주면
신기한 듯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만약 그 시절에 제가 야학을 다니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도 좌절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움을 주시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상록학교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는 날들입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들조차도 내 삶의 그늘이 너무 서늘해서
슬펐던 한 소녀에게 상록야간학교는 빛을 주었고 꿈을 꾸게 해주었습니다.
어리고 그늘진 감성의 소녀에게 이렇게 세월이 지나
미소 지으며 생각할 수 있는 뿌듯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름이란 계절은 참 고마운 계절입니다.
더욱이 여름에 입학과 졸업을 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여름이 주는 의미와 추억은 남다른 것입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
그 여름날의 추억들!
상록학교 모든 친구, 오빠, 언니들,
그 시절에 제게 꿈을 꿀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선생님! 최대천 선생님, 유진봉 선생님, 나의 영원한 친구 이민아,
고맙습니다.
그때 그 어렵고 배고팠던 시절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따뜻했습니다.
지금의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어려운 시절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함께 해준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0여 년 전 늦은 여름날 입학해서 졸업까지 함께 해준
선생님과 친구들, 지금은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나이든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
모두들 많이많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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