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마당
예순의 단상(斷想) 2
박 용 준
이리 돌아보면 가족들을 책임져온 세월이 골짜기 다랭이 논배미처럼 굽고 가파르다. ‘
옛날에 말이야~’ 하면 꼰대라고 한다던데, 난 이미 꼰대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옛날의 헐벗거나 굶주림의 이야기는 지나치겠다.
일제와 6.25 전쟁 이후 너나없이 힘들었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960년대 중반, ‘잘 살아보세’ 구호 속에 <새마을운동>
농촌의식변화바람이 전국으로 불어나갈 때였다.
우리 마을에도 새마을사업장에서 어른들은 바지게를 지고, 아이들도 삽을 들었다.
흙을 파내고 메꿔서 굽은 길을 바로 닦아 마을길을 내고,
허물어가는 초가를 기와로 바꿨다.
이때 어린이들은 애향단에 가입하고, 청소년들은 4H구락부 활동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 두렁콩도 심고, 풀베기를 해서 공동퇴비장도 만들었다.
그렇지만 누구하나 힘들다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듯 나서게 되었다.
잘살아 보겠다는 우리의 열정들을 어찌나 불태웠든지
우리 마을 4H가 전국에서 뽑혀 라디오 아침 6시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요즘은 어떤가? 내가 봉사하는 단체에 가르치겠다고 오는 분들이 많다.
젊은 대학생부터 나이 든 퇴직자까지 사회의 경험을 가진
다양한 봉사자들이 무료 교육을 위해 노크한다.
우리 야학에는 상시 근무하는 직원이 없다보니 교사들이 수업뿐만 아니라
학교행정과 각종 부수적 행사까지 맡아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은 하는데,
시간이 많이 드는 행정업무처리나 행사에 필요한 노동력에는 손을 보태려 하지 않는다.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헌신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은 분들도 이런 상황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자연도 옛날이 아니다.
일상을 뒤로하고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내달리는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
손바닥만큼 한 마을과 다정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반겼다.
들에는,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수런수런 녹음으로 우거진 개울가에 시냇물이 맑았다.
민물게, 참붕어, 뱀장어, 버들치, 피라미, 송사리들이 헤엄쳐 노는 데,
동네 아이들은 족대 들고 물속을 뒤지던 고향마을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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